박정원
기획예산처가 교육분야에도 공공부문 시장원리 확대방안을 적용하여 '바우처 제도'(교육 쿠폰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이러한 정책 근거는 학교간 경쟁을 강화함으로써 교육의 질이 올라가고 학생들의 선택권이 보장된다는 주장에 있는 것으로서, 통화주의자 밀턴 프리드만 등에 의해 이미 오래 전부터 주장되어온 것이다. 이들의 주장을 따라 미국 일부 주에서 실험을 계속하였던 정책이기도 하다. 그러나 미국에서의 바우처 제도 도입실험은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
그 이유는 학교간 경쟁강화와 학부모 선택권의 보장이 기대했던 것과 달리 교육의 질을 향상시킨 것이 아니라, 저소득층과 비백인들의 교육소외를 증폭시켜 사회계층간 갈등현상만 심화되었기 때문이었다.
지난 1월 초에는 플로리다 대법원에서 바우처 제도에 대해 위헌판결까지 내렸다. 지금 미국에서 그래도 남아있는 바우처 제도가 있다면 오로지 저소득층 지원 바우처 밖에 없다. 세계화 추진으로 인해 더욱 커진 사회 양극화 현상을 해소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 교육기회의 보장에 있기 때문이다.
최근 선진 각국의 교육정책은 저소득층의 교육기회를 보장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바우처 뿐만 아니라, 대학의 수업료와 신입생 선발방식 등도 모두 저소득층의 교육참여 여건과 의욕을 북돋우려 하고 있다.
대학교육까지 무상으로 공급하는 많은 유럽국가들은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하버드, 예일 등 미국의 대부분 명문 사립대학들조차 년간 소득 4만불 이하 가정출신 학생이 입학하면 모든 납부금을 면제해 주고 있다.
영국정부는 아예 노동자계급 출신학생의 입학비율 목표치를 대학별로 제시해 주고 있으며, 연소득 1만5천파운드 미만 가정 자녀들의 수업료를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게 하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계층간 교육기회의 불평등은 자녀의 교육을 사교육시장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가 으뜸일 것이다. 따라서 평등주의 교육정책이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나라가 또한 우리나라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육바우처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것은, 이 나라의 관료들이 국제정세에도 어둡고 국내상황에도 무지하다는 것을 스스로 보여주는 것이다.
일국의 교육정책은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저소득층 등 사회적 약자에게 유리하게 자원을 배분하는 평등주의 방식, 능력 있는 자에게 유리하게 자원을 배분하는 엘리트 방식, 계층에 관계없이 중립적인 성격의 자유방임형 방식. 이 가운데 우리나라의 중등교육정책은 큰 틀에서 고교평준화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외형적으로는 자유방임형이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기득권층에 유리한 특목고와 자사고의 광범위한 존재, 사교육시장에 대한 의존 방치, 특정지역 학생들에 대한 집중적인 교육재원 지원 등 전형적인 엘리트 방식에 속한다. 여기에 바우처 제도를 도입하겠다면, 고교평준화라는 형식마저 붕괴시키겠다는 속셈으로 보인다.
경쟁이 없어서 교육의 질이 개선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대학의 서열화가 고착되어 있고, 교육의 목표가 잘못 설정되어 있으며, 후진적인 입시제도와 열악한 교육환경이 교육의 질적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근본적 문제를 외면한 정책이 결코 성공할 수 없음은 지금까지 되풀이되어 온 교육정책의 실패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아니던가!
대통령은 양극화 해소를 강조하는데, 관료들은 정책의 성격도 모른 채 남의 나라 것을 베끼기 바쁘다. 선진국에서 실패한 것조차도…. 도대체 이 나라의 교육정책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그런데도 교육경험이 없는 관료들이 요직을 장악하고 있는 교육부는 자기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다. 부와 직업의 대물림을 위해 존재하는 이 나라의 교육을 올바로 다시 세울 수 있는 정책이 나와야 한다. 그것은 교육에서 평등주의적 토대의 강화이며, 이것이야 말로 선진국에서 배워야 할 정책이다.
상지대학교 경제학 교수/유뉴스(www.unews.co.kr)와 기사제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