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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승우/미디어오늘 논설실장 |
‘특별생방송 대통령과의 대화’ 프로그램은 민주주의의 기본인 협치(governance)에 역행한다. 국민과의 소통을 위한 목적이라면 27일 밤의 대화는 시민사회 등이 정책 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해서 구체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이 되어야 한다. 정부가 이미 기공식을 했거나 방향까지 확정한 상황에서의 대화란 대통령의 자기변명 또는 일방 홍보를 의미할 뿐이다. 전국의 수많은 방송사가 이번 행사에 동원된 형식은 이 나라 언론자유의 현주소를 상징하는 서글픈 현상이다.
이번 행사는 시민사회 또는 유권자가 정부에 대한 감시자로써 정책 입안이나 그 추진에 직접 참여한다는 취지가 아니다. 이날 대화의 주요 의제는 4대 강, 세종시 문제처럼 이미 한창 진행 중인 사안이다. 청와대가 논란이 자심한 이런 의제에 대해 백지 상태에서 다시 출발하겠다고 다짐하고 시민사회 등의 견해를 구하는 방식이라면 그것은 합당하다. 아직 구상 단계이거나 의제로 제시된 상태에서의 대화라라면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날 토론의 주요 의제의 하나인 4대강 사업의 경우 국회에서 예산이 통과되지도 않았는데 기공식이 벌어진 상황이다. 이는 대의민주주의 훼손을 의미한다. 더욱이 이 사업은 야당에서 다수의 법률위반을 지적하고 있다. 세종시 원안 수정문제는 관련법이 아직 살아 있는데 그것을 폐기할 것을 전제로 총리가 총대를 메고 정부가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부가 일부 수구신문과 대자본에게 방송사를 안겨주려 강행한 언론악법은 국회에서 심의 통과 절차가 불법이라는 헌재의 결정이 나왔지만 청와대에게는 쇠귀에 경 읽기일 뿐이다.
문제의 4대강 사업, 세종시 문제 등에 대한 국민적 여론은 정부 방침에 대한 반대가 압도적이다. 이들 사안의 특징은 정부가 민주적 절차를 준수치 않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정부가 다수 국민을 무시한 채 밀어붙이는 폭력성을 지니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이런 태도는 정권교체를 전제로 한 민주주의의 기본을 허물면서 정부의 신뢰성을 훼손하는 행위다. 이 대통령이 이번 대화를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한 과정으로 여겼다면 대화 이전에 국민에게 사과하고 법대로 하겠다는 기본 입장부터 밝혀야 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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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왼쪽) 대통령이 지난 1월30일 SBS가 방송한 <대통령과의 원탁대화>에 출연했다.(사진=청와대) |
이번 대화의 형식은 대통령 원맨 쇼가 펼쳐질 멍석을 깔아주는 식이다. 이는 청와대가 이날 행사의 주관 방송사인 MBC와 협의해 결정했다는 대화 진행 방식을 통해 유추가 가능하다. 대통령에게 직접 질문할 시민으로 10명이 사전에 선정되었고 플로어에서 방청하는 100여명의 일반 국민은 계층별, 연령별, 성별, 지역별 대표성을 갖도록 구성했다는 것이다. 이런 인적 구성은 대화 주제의 집중을 방해하고 심도 있는 논의를 불가능하게 한다.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진정 민주주의에 입각한 국민과의 소통을 위한 대화를 생각했다면 이런 방식은 매우 부적절하다. 대화는 진정성이 전제되어야 생산적인 결론으로 유도된다. 대통령이 이날 대화를 통해 자신의 문제가 있는 통치 스타일을 바꿀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인다. 정치는 정직이 최선이다. 현 정권은 인사, 정책 등에서 진정성을 배제한 특성을 지닌다. 집권 기간 동안은 청와대 맘대로 하겠다는 제왕적 대통령의 태도를 감추지 않는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발상이다. 유권자, 시민사회와의 협치를 통해 급변하는 시대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응한다는 현대 정치의 기본과는 담을 싼 태도이다.
정치는 준법을 기본으로 해야 한다. 그러나 이대통령은 자신이 인기에 연연치 않는다는 식으로 오만한 발상을 감추지 않는다. 이는 국민에 대한 노골적인 도전이다. 그는 특히 실정법의 틈새를 헤쳐 나가는 식의 묘기 대행진을 하거나 국회를 무시하고 실정법의 준수를 외면한다. 그러면서 국민에게는 법치를 강도 높게 주문한다. 그는 진정한 법치와 민주주의 발전과는 무관한 정치인이다. 이번 대화는 그래서 더욱 비생산적이다.
이날 행사에 다수의 방송사가 동참하는 것에 대해 청와대는 방송사가 알아서 하는 일이라고 시치미를 뗀다. 청와대가 말 따로 행동 따로 인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새로울 것은 없다. 그러나 손바닥으로 해를 가릴 수는 없다. 방송사의 대거 참여는 지난 1년 여 동안 방송장악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거의 가리지 않았던 청와대의 노력이 성과를 낸 것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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