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로운 삶은 세상 모든 사람의 꿈이다. 그래서 아주 오래전부터 인류는 풍요를 비는 제의를 이어왔다.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해신제를, 산을 기반으로 사는 사람들은 산신제를 지냈으며 마을의 풍요와 안녕을 위해 마을제와 굿을 열기도 했다. 풍요는 물질적인 것만을 뜻한 것은 아니었다. 자손이 많이 태어나 혈통이 풍요로운 집안이 되기를 바랐다.
이런 면에서 보면 현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바람도 다르지 않다. 더 많은 연봉과 높은 매출, 더 비싼 집을 바라고, 한편으로는 더 많은 아기가 태어나기를 바란다. 하지만 청년층의 취직은 더욱 힘들어지고, 사업자의 폐업률은 높아진다. 폭등하는 집값에 허리가 휘어질 정도가 되니, 자연스레 결혼을 포기한 사람이 많아졌다.
이러한 시대를 모두가 걱정하지만 딱히 시원한 해결책은 나오지 않는다.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이 막고 있는 것이라면, 실로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신(神)인 뱀의 기운에 기대어야 할 때가 아닐까?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 뱀의 양면성
2025년 을사년(乙巳年)은 뱀의 해다. 12간지에서 뱀은 여섯 번째에 해당하며,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생명력과 지혜를 의미한다.
나무의 기운에 생명의 시작과 성장을 의미하는 ‘을’과 따뜻한 기운과 지혜를 상징하는 ‘사’로 이루어졌으니, 올해는 그야말로 지혜롭고 신중하게 성장하는 때라고 풀이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 사는 가장 큰 뱀은 구렁이다. 조상들은 구렁이를 ‘업’이라 부르며 집안의 부를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여겼다. 지붕이나 돌담에 숨어 지내는 구렁이가 나가면 집이 망한다고 생각해 쫓아내지 않았다. 곳간에 쌓아둔 곡식을 훔쳐먹는 쥐를 잡아먹는 이로운 존재였으니,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보다 더 귀한 존재로서의 뱀은 충남 태안군에서 찾을 수 있다. 옛날 황도의 어부가 바다에 나갔다가 방향을 잃고 헤매다가 멀리 보이는 뱀의 눈 같은 불빛을 따라가 무사히 귀향했다. 빛이 시작된 자리에 제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며 풍어제가 시작되었다. 그래서 황도 사람들은 뱀과 상극인 돼지를 꺼리고 키우지도 않았고, 배를 타기 전에는 먹지도 않았다고 한다. 이 풍어제는 17세기 말엽, 조기잡이의 신 임경업 장군을 모시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제주도에서는 뱀을 물할망이라 부르고, 생명의 근원이라 여기며 신성하게 여겼다. 또 “뱀신은 잘 먹으면 잘 먹은 값, 못 먹으면 못 먹은 값을 한다. 큰 굿을 하면 큰 밭을 사고, 작은 굿을 하면 작은 밭을 산다”고 할 정도로 절대적인 존재였다.
경기도 용인에는 나무꾼이 칡으로 묶어 끌고 가는 구렁이를 본 선비가 엽전 한 냥을 주고 구해주자, 황금이 숨겨진 곳과 명당자리를 알려주며 은혜를 갚았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김유신 장군 묘의 십이지신상 중 뱀신.
치악산 상원사 설화의 인간을 해치려는 구렁이처럼 부정적인 존재로 그려지기도 하고, 양반 가문 아들과의 사랑에 배신당한 이방의 딸은 죽어서 상사뱀이 되는 안타까운 이야기도 있어 뱀은 궁극적으로 부정의 존재도 아니요, 긍정의 존재라고 하기도 어려운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충남 공주에 전승되는 설화를 보면 사람이 뱀에게 미치는 영향력도 거대하다. 산골 여인의 집에 하룻밤 신세를 진 가난한 선비가 반년이나 함께 산다. 선비가 고향으로 가자 여인은 금은보화를 보냈다. 고마움을 전하려고 여인에게 가던 길에 백발노인을 만나는데, 여인은 구렁이며 선비를 잡아먹고 용이 되려 하니 밥을 먹는 척하다 얼굴에 밥을 뱉으면 구렁이가 죽는다고 알려준다.
고민하던 선비는 여인에게 노인 이야기를 고백한다. 그런데 백발노인은 여인과 승천을 두고 다투는 돼지였으며, 밥을 뱉었다면 여인도 선비도 죽었을 것이었다. 구렁이는 용이 되어 승천하고, 선비는 구렁이 여인 덕분에 대대손손 잘 살았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보면 사람이 내뱉는 악한 기운은 신비로운 힘을 가진 존재까지도 망가뜨릴 힘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저승신화에서는 입으로 지은 죄는 저승 십대왕 중 염라대왕에게 심판을 받고, 변성대왕은 독사지옥으로 사람의 죄목을 심판한다. 그러니 인간은 살아서 업신에게 도움을 받고, 죽어서는 독사지옥에서 죄업을 갚아야 하니 어쨌든 잘 살아야만 할 일이다.
천경자 화백의 ‘생태’ 중 일부.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희망
봄이 되면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뱀은 새 희망의 존재다.
허물을 벗어 재생하는 삶을 사는 존재인 뱀은 변화의 상징이기도 하다. 상징 세계에서의 뱀은 수행을 통해 용이 되는 기회를 가진 특별한 존재도 된다. 그런 뱀이, 현실 세계의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뱀이 점점 사라지는 존재가 되었다.
환경부 산하 국립생물자원관의 국가생물종목록에 따르면 11종의 육상 뱀 중에서 야생생물 1급 비바리뱀, 야생생물 2급 구렁이가 멸종위기에 처해있다. 까치살모사도 한때 멸종위기에 지정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뱀인 구렁이는 마을과 집을 지키는 영물로 알려졌지만, 현재 개체수가 매우 적다고 한다. 국토 개발로 기존 서식처가 파괴되고, 찻길 사고와 잘못된 보신 문화로 인한 밀렵 등으로 개체 수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유독 뱀에만 해당하는 사항은 아니다. 많은 야생동물이 겪고 있는 현실이며, 조만간 거의 모든 자연이 마주하게 될 상황일지도 모른다. 모두 인간의 욕심에서 비롯된 결과라는 점을 사람들도 이미 인지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존재에 대한 파괴는 인간의 본능처럼 멈추지 못하고 있다. 무엇을 얼마나 많이 가져야 만족할까? 새로운 삶을 바라고, 새로운 희망을 꿈꾸며 현재의 껍질을 탈피하는 뱀처럼 사람들도 현재의 낡고 진부한 ‘욕심’이라는 껍질을 버릴 때가 되었다.
우리나라 신화 ‘원천강본풀이’에 여의주 세 개를 가진 이무기가 나온다. 하나만 남기고 두 개를 포기해야만 용이 될 수 있지만, 여의주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해 이무기가 가진 천 년의 꿈인 용으로 승천하지 못하고 있다. 주인공 오늘이에게 이 이야기를 듣고 난 뒤, 자신이 거머쥐고 있던 욕심이 무엇인지 깨닫고 여의주 두 개를 오늘이에게 내민다. 그리고 용이 되어 승천한다.
사람들도 저마다 품고 있는 꿈과 희망이 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스스로 손에 꼭 쥐고 내놓지 못하는 어떤 욕심을 버려야만 한다. 소중하고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 큰 꿈, 가장 궁극적인 꿈을 위해 반드시 내려놓아야만 하는 것은 ‘욕심’일지도 모른다. 조금 더 열린 생각, 더 큰 마음으로 보면 자신의 실체가 보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