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공채 시험에 합격하여 국가보훈처에서 일한지도 벌써 3년이 지났다. 아직은 보훈업무가 무엇인지 속속들이 알지 못하는 신규공무원이라 말할 수 있는 짧은 시간이기도 하다.
이 곳 의정부보훈지청으로 와서 호국보훈의 달 행사의 일환인 백일장 행사에 보훈공무원으로서 올해 처음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작년까지는 정부주최로 진행되는 중앙행사장에만 안내직원으로서 참석했기 때문에 행사장에서 어린이와 청소년을 만나는 건 매우 드문 일이었다.
아직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깨끗한 원고지처럼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는 아이들을 만나는 건 꽤 기분 좋은 일이기도 하다.
여기저기 자리를 펴고 열심히 글짓기를 하는 아이들에게 조금 쑥스러워하며 나라사랑 큰 나무 배지를 나눠주기 시작하다가 배지를 받고 좋아하는 아이들 때문에 즐겁게 끝내기도 했다.
길거리에서 관심 갖기에는 너무나 바쁜 어른들에게 배부행사를 벌일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게 보람도 많이 느꼈다.
현충일 추념식이 끝난 후 진행된 백일장 행사에는 초등학생들이 많이 참여해 주었고, 더운 날씨 속에서 불편한 자리임에도 글짓기 삼매경에 푹 빠져있는 모습이 참 기특하기도 했다.
그러다 한 학생이 우리에게 글짓기 주제에 쓰여 있는 '순국선열'이 무슨 뜻인지를 물어보았다. 하긴 내가 처음 입사했을 때도 이 단어를 접했을 때 선뜻 의미가 다가오지 않았는데 하물며 아이들이 어려워하는 건 당연하겠구나 싶었다.
같이 진행하고 계셨던 계장님은 조금은 어렵게 '우리나라가 독립한 8월 15일 이전에 독립운동을 하다 돌아가신 분'이라고 설명을 하셨고, 그래도 이해가 잘 안간 학생은 그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결론을 내기 위한 분류기준을 "착한 사람이에요 나쁜 사람이에요?"라고 정한 듯하다. 그런 질문이 나오리라 전혀 예상치 못한 계장님은 당황하며 "착한 사람, 아니 존경스러운 사람이지."라고 답해주셨다.
어딘가 다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글짓기를 다시 시작하는 학생을 바라보며 우리나라의 일제암흑기의 슬픈 역사가 이제는 저 어린 학생들에게는 정말 까마득한 이국의 역사로 되어 버린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돌이켜보니 90년대를 학창시절로 보낸 나 역시도 개화기 이후의 열강의 침투 속에서 괴로워했던 우리나라 역사를 정규과정에서 제대로 배웠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대개 책이 아니면 텔레비전에서 방영해주던 오래 된 한국영화에서 우리나라를 침탈한 일제에게 분노를 느끼며 고문 받는 장면에서는 고개를 돌리고 독립운동가들이 불쌍하다고,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 힘이 없냐고 분통을 터뜨렸던 것 같다.
빛의 속도로 변화하는 현재를 살고 있고,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미래의 주인공이 될 아이들에게 우리나라의 독립운동가도 왜 알지 못하냐고 야단을 칠 자격은 없다. 왜냐하면 그렇게 만든 건 바로 우리 어른들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바쁘게 살 수밖에 없게 만든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 손을 잡고 역사의 현장을 방문한 적이 몇 번이나 있겠는가.
역사는 되풀이되므로 미래를 알기 위해서는 과거의 역사를 보면 안다고 했다. 아니 거창한 명분은 차치하고, 최소한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아이들에게 우리나라가 어떻게 해서 나라를 잃었다가 다시 독립을 되찾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대화를 나눴다는 기억을 갖게 해주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원고지를 잘 써나가도록 도와주는 건 어른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