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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승우/미디어오늘 논설실장 |
청와대는 노 전 대통령이 정치적 타살을 당했다는 비난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검찰이 법에 따라 수사를 한 것인데 무슨 소리냐는 것이다. 현 정권의 ‘법대로’ 표현의 자유와 국민의 생존권을 짓밟는 일그러진 법치주의다.
청와대의 법치주의는 촛불을 박살내고 용산 철거민을 테러로 몰았다. 그것은 공권력이 시민의 기본권 위에 군림하는 법치주의다. 살아 있는 권력엔 눈을 감고, 죽은 권력은 이 잡듯 뒤지는 법치주의다. 노 전 대통령 쪽에 대해 장기간 행한 저인망식 수사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인권 탄압의 독기를 품고 있었다는 점을 이명박 정권은 전혀 인식치 못하고 있다.
공권력의 전형적 인격살인
공권력은 목적을 위해 피의사실 공표를 수시로 저지른다. 언론과 한 통속이 되어 여론 재판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는 관행으로 굳어있다. 노 전 대통령 쪽에 대한 수사는 이 나라 공권력이 자행한 전형적인 인권 살인이었다.
경찰차가 덕수궁 앞 대한문 시민분향소를 숨막히게 하는 것도 명백한 시민에 대한 인권 탄압이다. 청와대는 말로는 ‘고인을 최대한 모시라’고 했지만 경찰은 덕수궁 앞의 빈소를 닭장차로 둘러쌌다. 시청 앞 광장은 텅 빈 채 경찰 버스의 보호를 받고 있다. 조문이 폭력시위로 변질할 것을 우려한 공권력의 사전 조치다.
행정력이 상상력을 발동해서 자의적인 판단으로 조문을 차단한다? 그것은 다른 말로 하면, 시민을 예비 폭도로 보고 시민의 인권과 의사 표현의 자유를 짓밟는 폭거다. 빈소에 대한 차단과 압박은 고인에 대한 모욕이다. 시민권에 대한 도전과 탄압이다. 공권력은 덕수궁 앞 빈소에 조문객 10여만명이 다녀갈 동안 절대 범해서는 안 될 패륜을 저질렀다.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표출된 민심은 고인에 대한 깊은 동정과 집권층에 대한 뜨거운 분노로 압축된다. 그들은 노 전 대통령이 몸으로 보여준 교훈 앞에 눈물을 강물처럼 쏟아낸다. 민심은 노 전 대통령이 수구 기득권층에 맹렬히 도전했다가 처참하게 생을 마감한 의미를 정확히 읽고 있다. 그들은 노 전 대통령에게서 청와대로부터 배신당한 자신들의 모습을 보고 있다. 민심은 국민의 머슴이어야 할 청와대가 어떻게 변질했는지 분노하고 있다. 개 꼬리가 개 몸통을 휘두르는 비극에 몸서리치고 있다.
민심은 노 전 대통령이 생전에 보여주었던 참다운 지도력의 의미를, 그가 이승을 하직한 뒤에야 생생히 보고 있다. 민심은 그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의 개인적인 작은 흠은 모두 용서했다. 그러나 민심의 집권층을 향한 시선은 분노에 떨고 있다. 민심은 수구 기득권층이 여전히 닭장차로 덕수궁 부근과 시청광장에 오만과 독선의 장벽을 치는 것을 보고 가슴을 치고 있다.
집권층은 민심이 목말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 민심은 참말로 살기 좋은 세상, 인권이 보호받는 그런 세상을 원한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를 원한다. 공권력이 법을 무기 삼아 민주주의를 탄압하는 불의를 물리치려 한다.
청와대, 민심 읽으라
민심은 무서운 저력을 지니고 있다. 민심은 수십년의 군부 독재를 끝장내게 하고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정착시켰다. 그들은 촛불을 통해 기존의 정치권이 더 개혁할 것을 요구한다. 기존의 정치권은 그러나 여야를 불문하고 여전히 민심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한다.
청와대는 민심을 정확히 읽어야 한다. 민심은 고인에 대한 동정과 현 정권에 대한 분노를 눈물로 쏟아내고 있다. 이런 민심을 북한 핵실험의 위기로 가라앉힐 수 없다. 국가보안법으로 겁줄 수 없다.
민심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인해 한 단계 더 진화했다. 이명박 정권은 그것을 읽지 못하거나 읽기를 거부한다. 그런 시대착오적 태도는 화를 부른다. 시간은 청와대 편이 아니다. 더 늦기 전에 민심을 읽어라. 민심은 인간다운 대접을 받는 정치, 사회를 원한다. 전직 대통령조차 정치적 타살을 당하는 비극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읽고 있는 민심이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