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관리 업계에 따르면 건설현장 일선의 안전관리자 신분은 계약직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최근 들어 일부 대형 건설사들이 안전관리자를 정규직으로 고용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건설사는 수주의 불확실성, 비용절감 등을 이유로 프로젝트가 생길 때마다 계약직 안전관리자를 선임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안전관리 업계는 “계약직 안전관리자는 사업주에게 임시 고용된 입장이라 공사기간 단축을 위해 무리를 하는 시공사에 쓴 소리를 하기 어려운 구조”라며 “작업자들에게 위험 요인을 지적하더라도 작업을 중지시키는 등의 권한이 없기 때문에 한 귀로 흘려듣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또한 계약직 안전관리자는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거나 옮기는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공정 초기에는 안전관리자가 존재하지만 마무리 단계에서는 안전관리자가 모두 현장을 떠나는 상황도 잦다는 게 그들의 입장이다. 결국 산업재해로 연결될 수 있는 상황임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
안전관리 업계에서는 “발주자가 직접 고용하거나 지자체 등에서 선임하는 방식을 통해 안전관리자에 대한 권한과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업 내 안전관리 담당자에 대한 인식과 대우 역시 낮은 편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우리가 집고 넘어갈 문제가 한 둘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안전관리자가 현장 업무에 집중하기 어려운 현실도 문제다. 수시로 이뤄지는 관계기관 점검과 각종 서류 업무에 치일 수 밖에 없어 집중도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장정규 한국종합안전 대표이사는 “안전관리계획서와 유해위험방지계획서 같은 서류는 유사성이 높은 작업이지만 각각 작성해야 하기 때문에 행정력 낭비가 심하다”며 고용노동부와 국토교통부, 지자체 등의 점검을 받다 보면 업무 중복도와 피로도가 높아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현장 관리감독자의 안전 참여 의식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빗발치고 있다. 관리감독자는 최일선에서 협력사를 지휘하는 만큼 현장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관리감독자는 주어진 공사기간 안에 공사를 완료하기 위해 필요한 자재 및 인력수급 계획을 세우고 공사 진행 문제점을 파악해 개선해야 한다.
강부길 한국안전보건기술원 대표이사는 “관리감독자 대부분이 공사 진행에만 집중할 뿐 안전관리 문제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안전사고 발생시 현장소장과 안전관리자는 처벌을 받는 경우가 많지만 관리감독자는 조사 및 처벌 대상에서 빠지는 경우가 많아 책임의식 역시 낮아지는 것”이라며 불편한 진실을 꼬집었다.
언론 보도를 조금이라도 살펴보면, 노동현장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산업재해로 사망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해마다 2,000명 이상의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희생당하고 있으며 하루 평균 7명이 사망하고 있다는 기사들은 우리에게 항상 경각심을 가지라고 경고의 메시지를 남기는 듯하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0년 산업재해 사고 사망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산재 사고 사망자는 전년 대비 27명 늘어난 가운데 나이가 많을수록 사망자가 많다는 결론이다. 연령대별 사망자를 보면 60세 이상이 347명(39.3%)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50대(292명), 40대(137명), 30대(64명), 18∼29세(42명) 순이다. 업종별로는 건설업이 458명(51.9%)으로 절반을 넘었고 제조업(201명)이 뒤를 이었다.
노동부 관계자는 “건설노동자의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산재 사고 사망자 중 고령자의 비율도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노동부는 올해 산재 사고 사망자를 지난해보다 20% 적은 705명 이하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하지만 이 숫자는 현 정부가 앞서 제시한 목표치를 크게 밑도는 것이다.
2021년 5월6일 오전 10시30분 평택항 부두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23세 이선호군이 300㎏에 달하는 강철로 된 컨테이너 뒷부분 날개에 깔려 사망하는 사건이었다. 중대재해법조차 막지 못한 사건으로 젊은 나이의 이선호군은 하늘의 별이 되어 떠나갔다.
더 이상 노동현장에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우리는 과연 무엇을 향해 나아가야 할까. 지금의 자리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깨닫고 듣고 배워야만 다른 사람들의 안전을 진심으로 지킬 수 있을까. 죽음을 양산하는 현재의 시스템에서 우리는 벗어나야 한다. 아침에 출근했다가 저녁에 돌아오지 못하는 사회는 이제 끝을 봐야 할 때가 왔다.
안전보호구 미착용 건설현장.
*‘경기도 2021년 노동안전지킴이’ 수행기관인 경기북부노동인권센터(031-859-4847, 070-4543-0349)는 ‘경기북동부권역(가평군, 구리시, 남양주시, 양주시, 의정부시, 포천시)’을 담당하고 있음. 경기북동부권역 중소규모 건설현장과 제조현장 등에 대한 안전수칙 준수 여부를 상시 점검하고 단속을 통해 산재예방 강화 및 안전문화 정착을 위해 활동 중임.